본문 바로가기
하프타임

나의 책 출판 이야기

by 선한 부자-이현주 2022. 11. 12.

처음부터 책을 내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퇴사 후, 지난 삶을 돌아보는 글을 올해 6개월간 '딱 좋아' 블로그에 비공개로 썼다. 짬짬이 찍어놓은 사진을 곁들여 30년 독일에서의 삶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적어나갔다.

 

책 읽기의 어려움은 첫 장부터 읽으려는 성실한 마음가짐 때문이고, 글쓰기의 어려움은 시간순으로 (혹은 기초부터) 적으려는 치밀함 때문은 아닐까? 학술 논문도 아니고, 위인전을 쓰려는 것도 아니니 시간순 글쓰기라는 압박은 가뿐히 내려놓았다. 반년 동안 꽤 많은 글이 쌓여갔다. 그간 어지간히 할 말이 많았나 보다.

 

어느 날 쏟아놓은 이야기들을 혼자서 읽다가, 문득 '책으로 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써놓은 글들을 공개로 돌리지도 않으면서, 이 이야기들을 책으로 낸다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을 이유와 당위성을, 나는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모아둔 글을 책으로 엮는 데 용기를 준 김민식 작가의 책을 만났다.

책을 읽는 것은 사적인 즐거움이지만, 글을 쓰는 것은 공적인 행위입니다. 책에서 얻은 교훈을 내 삶에 적용하고, 또 세상을 향해 발언할 때는 글로써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기를 감히 희망합니다. 여러분도 책 읽기와 글쓰기, 사적인 욕망과 공적인 의무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시길 희망합니다. 

≪매일 아침 써봤니?≫(김민식 저 / 위즈덤하우스)

 

기존 출판사

책 출판을 마음먹고 몇몇 출판사에 출간 기획서와 맛보기 글을 보냈다. 민음사, 문학동네, 창비 같은 소위 '넘사벽' 출판사와 평소 좋아하던 위즈덤하우스, 해냄, 썸앤파커스, 그리고 소규모/일인 출판사인 더블엔, 제철소 등등에 출판문의 메일을 보냈다. 내 절친 중에 독문학 교수가 있다. 창비에 출판 문의 메일을 보냈다고 하자 피식~ 웃더라는. 세상 모든 일은 일단 해봐야 한다고! 티끌만 한 가능성을 굳이 내가 차단할 필요는 없다.

 

내가 투고한 출판사들의 반응은 크게 다음의 네 유형으로 정리된다.

  1. 투고가 접수됐다고 알려주고, 거절 메일도 나중에 따로 보내는 친절한 출판사

  2. 투고가 접수됐다고 알려주며, 출판이 어려우면 따로 연락하지 않겠다는 차도남 출판사

  3. 투고 접수와 거절 메일을 하나로 묶어 보내는 실용파 출판사

  4. 접수 여부도, 논의 결과도 알려주지 않는 깜깜무소식 출판사

대부분의 넘사벽 출판사들과 일인 편집장 체계의 더블엔이 깜깜무소식 유형에 속한다. 출판사 규모가 크든 작든, 투고에 대한 자동 응답 메일 시스템 정도는 갖춰놓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가 독일에서 회사 지원할 때, 접수 메일조차 보내지 않다가 나중에서야 면접 보러 오라고 하면 내 선에서 걸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으니까.

 

투고한 출판사의 30% 정도가 접수와 추후 거절 메일을 보내줬다. 위즈덤하우스, 썸앤파커스, 스튜디오오드리, 달, 마음산책이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친절한 출판사다. 제철소 편집장은 나의 적잖은 원고를 다 읽은 후, 정성 담긴 거절 메일을 보내줬다. 서운하기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원고의 제목과 글 순서를 바꾸고 독자 타깃을 변경하자는 제안을 한 출판사도 있었다. 잘 팔리고 더 많이 읽히기 위한 전문가의 조언이었다. 하지만 이 책만큼은 내 의도대로, 내가 정한 제목을 붙여 세상에 내놓고 싶어 나는 자비 출판을 알아보기로 했다.

 

자비 출판사

자비 출판사로 생각나눔, 렛츠북, 바른북스, 지성과 감성 등에 견적 문의를 했다. 최소 300부 종이책을 찍어 작가에게 다 주는 곳도 있었고 (출판사라기보다는 인쇄소 같은 곳), 200부부터 오프라인 서점 유통을 해주는 대신 비용이 꽤 높은 곳도 있었다. 종이책을 출판하면 pdf 파일은 무료로 준다고 했다. 대부분의 자비 출판사는 epub 형태의 전자책 제작을 하지 않거나 50만 원 정도의 제작비를 따로 요구했다. 내가 문의한 자비 출판사들은 종이책 출판에 주력했다. 적은 부수의 종이책(소장용)과 epub 전자책(전자 서점 유통용) 제작을 맡기려던 나의 바람과 딱 맞아떨어지는 자비 출판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무료 출판사 - POD 제작 플랫폼

자비 출판사를 알아보는 중에 맞춤형 소량 출판(POD, Publish On Demand)이란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맞춤형 소량 출판은 '미리 종이책을 찍지 않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레이저 프린터 등으로 종이책을 인쇄하는 방식이다. 주문형 출판이라고도 한다.'(출처: 위키백과). 종이책을 미리 찍어 창고에 쌓아둘 필요가 없어서 재고 염려는 없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인쇄하는 방식이라 책을 받아보기까지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대표적인 POD 제작 플랫폼으로 교보 POD가 있다. 원고만 제공하면 책을 무료로 출판해준다. 단, 재외국민은 POD 작가로 받아줄 수 없단다. 인세로 인한 세금 문제가 복잡하다나 뭐라나... 

 

나는 부크크를 통해 종이책을 출판했다. 부크크는 POD 제작 플랫폼인 동시에 출판사다. 회원가입하고 탈고한 원고를 제출하면 승인 절차를 거친 후에 ISBN을 발급받아 종이책으로 등록해준다. 부크크 홈페이지에서 책을 판매하며, 외부 온라인 서점(Yes24. 교보문고, 알라딘)에 유통도 해준다. 책표지도 골라 살 수 있다. 부크크에서 종이책 만드는 법은 여기를 참고하면 된다.

 

부크크는 무료 전자책 제작을 해주지 않는다. 작가가 이미 만들어진 epub 혹은 pdf 파일을 제출하면 역시 승인 절차를 거친 후에 ISBN 달아서 전자책으로 등록해준다. 전자책은 부크크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종이책을 pdf 파일로 전환해 전자책으로 제출하면 만사 편하겠지만, 나는 원고를 스캔한 pdf 파일을 전자책이라 여기지 않는다. epub 전자책을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정리하면, 부크크에서 종이책과 전자책을 출판하고 외부 유통까지 드는 비용은 무료다. ISBN을 발급받아 내 책에 떡 붙여 전 세계에 하나만 존재하는 책으로 정식 등록해준다.

 

무료 출판이라지만, POD 제작 플랫폼은 작가의 완성된 원고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왕서방 같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느낌? 

 

epub 전자책 만들기

나는 나모오서라는 툴로 epub 전자책을 직접 만들었다. 원고만 있다면 작업은 어렵지 않다. 문서 작성기처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HTML과 CSS를 안다면, 일일이 메뉴 찾아다니며 귀찮게 여러 번 마우스 클릭할 필요 없이 직접 코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거 몰라도 사용하는 데 전혀 문제없다. 탈고한 원고를 txt 파일로 내보낸 후, 나모오서로 불러오면 작업의 반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달 테스트 버전이 있으니 사용 설명서로 간단한 전자책 만들어보고, 해볼 만하면 개인용 영구 버전을 구입하면 된다. 가격은 현재 44만 원이다. 

 

출판이 제일 쉬웠다

무료 출판 플랫폼 덕분에 출판은 어렵지 않았다. 종이책 출간 후, 나모오서 툴로 어렵잖게 epub 전자책을 만들어 등록했다. ≪글쓰기 훈련소≫(임정섭 저 / 다산초당)가 글쓰기에 훌륭한 길잡이가 돼주었다. 딱히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따로 글쓰기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고 다독하는 편이라 글은 술술 막힘없이 쓸 수 있었다.

 

외국에서 30년을 살다보니 감이 떨어지는 표현과 부족한 어휘는 국어사전으로 보강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검사 후 도움말을 통해 수정 이유를 밝히는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블로그에 쓴 글을 아래 한글로 옮겨 원고 작성을 했다. 그런데 블로그와 아래 한글이 제공하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꽤 달랐다. 온라인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의 결과 또한 달랐다. 검사기마다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바람에 꽤 고생했다. 강호 무림들이 판치는 춘추전국시대를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맞춤법 검사기를 만들길래 사용하는 툴마다 상이한 결과가 나오는 걸까?

 

내게 또 어렵게 다가온 것은 문장부호의 사용이었다. 큰따옴표, 작은따옴표, 콤마, 괄호 안/밖 마침표 등. 국립국어원의 지침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탈고 전에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지인이 교정을 봐주었다.

 

개인적으로 책 만드는 데 글쓰기는 즐거운 놀이였고, 가장 쉬었던 과정은 출판이었으며, 신나게 했던 작업은 전자책 제작이었나, 교정/교열에서 꽤 고생했다.

 

글쓰기부터 출판까지의 기간: 약 8개월

글쓰기 6.5개월 정도
교정/교열/편집 1.5개월 정도
종이책 출판 1일
전자책 제작 및 출판 4일 (이중 출판 기간은 1일)

 

생애 첫 책을 만들고 싶다면

기존 출판사의 도움 없이도 만들 수 있다. 종이책 발간이 목표라면 200여만 원 정도로 자비 출판할 수 있고, POD 제작 플랫폼으로 무료 출판 역시 가능하다. 대신 손품을 팔아야 한다. 뜻이 없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방법이 있긴 하지만, 책 출판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권한다. 콘셉트, 책 제목, 목차의 순서, 타깃 독자 선정, 교정/교열 등 출판 편집자들은 책 만드는 고수다. 기존 출판사로부터 '간택'을 받지 못했다면 유료 편집자 서비스를 이용해도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FestBook 출판사는 마스터 패키지 상품에 전문가의 손품을 담아준다. 

 

대부분의 자비 출판사나 무료 출판사는 작가가 제출한 원고에 손을 대지 않고 출간한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마추어 냄새가 폴폴~ 난다. 내 책처럼. 

 

멋진 경험

책을 냈다고 하니 지인들이 다들 놀란다. 무료로 출판했다고 하니 화들짝 다들 비법을 알려달란다. 책 내고 싶은 사람들은 꽤 많은데, POD 제작 플랫폼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 할 말 많고 (글감이 풍성하고) 자기를 위한 시간이 생겨나는 오십대들이 책 출판에 막혀 주저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뜻이 없지, 글감이 없나요, 방법이 없나요! 주저하지 말고 써보세요. 말갛게 씻긴 얼굴을 한 지난 삶과 마주하는 멋진 경험을 할 겁니다."

 

지난달 10월에 대학 동기와 후배가 30여 년이 훌쩍 지나 파리에서 만났단다. 너무 반가워 손 맞잡고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며 동기가 말했다.

"긴 시간 서로 못 만났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온 것이 고마워서."

고마움, 나 역시 이 마음으로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읽을 듯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꿋꿋이 살아온 오십대들의 책 출판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스스로 편집장 역할까지 하며 만든 책을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거참 소박하게도 생겼다.'

지난 몇 개월간 글감을 캐내 씻고 다듬어 글로 쓰고, 종이책전자책으로 출판하는 일련의 작업이 내겐 꽤 재밌는 놀이였고 근사한 경험이었다.

 

ⓒ 2023. 이현주
내 책의 표지 디자인 과정

 

'하프타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다  (0) 2023.02.18
자동차 주문, 그리고 몇 가지 단상  (0) 2022.11.25
지금은 내 인생의 하프타임  (0) 2022.11.02
오, 오 서방!  (0) 2022.06.20
일기보다 가계부  (0) 2022.04.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