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콥의 호박
야콥은 이웃집 아홉 살 난 꼬마의 이름이다.
도나우(Donau) 동네로 이사 와서 사귄 첫 이웃의 아이다. 말없이 제 엄마 곁에 서 있기만 하던 야콥이 낯이 익자 저세상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바이에른(Bayern) 사투리다. 올망똘망 귀엽게 생긴 아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별나라 말에 홀려 나는 눈에 하트 서너 개는 달고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는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나를 이해 못 하는 눈치다. 야콥은 나의 표준 독일어를 잘 알아듣는다.
작년 가을 이삿짐 정리가 대충 끝나갈 무렵, 두어 번 마주친 야콥이 제 엄마와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야콥 엄마의 두 손에는 커다란 호박이 들려 있었다.
"야콥이 추수한 호박이에요. 수프로 먹으면 맛있어요."
세상에나, 저 콩알만 한 아이가 호박 농사를 지었다니. 아이와 눈을 맞추며 고맙다 말하자 수줍게 제 엄마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야콥의 누런 호박덩이가 남편에게 받는 꽃만큼 예뻐서 거실 장 위에 꽤 오랫동안 놓아두었다.
야콥이 들고온 호박
가만히 보면 야콥은 참 바쁘다. 아침 7시 25분이면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선다. 그전에, 키우는 메추리들이 밤새 안녕한지 둘러본다. 정오쯤 집에 돌아와서는 메추리의 사료와 물을 확인한다. 봄이 오려는지, 야콥이 마당에 있는 텃밭에서 일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아하, 저 밭에다 호박 농사를 지었던 거구나.'
나는 야콥이 총총거리며 다니는 뒤꽁무니를 창문 너머로 하트 뿅뿅 날리며 바라본다.
야콥의 아빠는 건축가다. 아빠 따라 농사짓는 줄 알았더니 농사는 오로지 야콥의 몫이다. 메추리들도 야콥 것이다. 야콥의 별나라 말을 내 나름대로 이해한 바에 따르면, 애초 메추리들은 열세 마리였단다. 사육장 안에서 세력 다툼을 벌인 뒤에 몇 마리가 죽었고 겨울이 되면 털갈이하느라 알을 많이 낳지 못한다고 했다. 호박 농사에 이어서 또 한 번 놀랐다.
'메추리들도 세력 싸움을 하는구나. 그걸 이 꼬맹이가 아는구나!'
언젠가 야콥에게 농가에서 파는 메추리 알이 열 개에 3유로 50센트(약 4.500원) 한다고 말했더니 너무 싸다며 정색했다. 유지관리비와 노동까지 계산하면 한 알에 1유로를 받아야 한다며. 아홉 살 아이의 경제 개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야콥의 메추리 알은 아직 선물로 받지 못했다. 맛난 걸로 살살 꼬셔봐야지.
한번은 바깥이 시끄러워 내다보니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메추리 사육장 앞에 둘러서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훗, 병아리들이 메추리를 보고 있네.'
나중에 물어보니 야콥 반 아이들이 메추리 키우는 것을 보려고 견학 온 거란다. 옆집 꼬마 덕분에 견학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야콥 엄마는 카니발(Karneval) 방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단다 (바이에른주에는 3월 초에 일주일간 카니발 방학이 있다). 아이가 점수 욕심이 많아서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안절부절못한다며. 방학 때는 학교 공부를 잊어버리도록 자주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겠다며 야콥보다 더 방학을 기다린다. 아이는 오후에 학원 가는 대신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메추리들을 돌본다. 엄마는 점수 욕심이 많은 아이가 못마땅하다. 참 낯선 풍경이다.
Haltern am See/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