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일에서 20년 넘게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30대부터 50대를 개발자로 살았다. 치열했으나 뿌듯했고 재밌었으나 힘들었던 때는 흰머리가 꽤 늘어난 50대였다.
50대 개발자로 일했던 마지막 회사는 독일의 노동청과 복지부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IT 회사였다. 첫 부서에서 나의 업무는 기존 제품의 유지관리와 보수였다. 내 능력의 60~70%만 투입하면 해결되는 업무였다. 나 또한 굳이 내 능력의 100%를 꽉 채우려고 일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퇴근길에 장을 봐 저녁밥 짓는 데 공을 들이고, 헬스장에 등록해 운동하며, 빛의 속도로 쏟아지는 IT 기술을 짬짬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이게 사는 거지, 뭐'라고 스스로 다독였지만 속은 시끄러웠다. 업무는 지루했고 개발자로 일하던 설렘은 사라졌다. 도전 없이 하던 일만 계속하면 시장에서 점점 도태되어 이직이 어렵다는 불안감도 쌓여갔다. 나이 들어 계속 개발자로 일하고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이직해야 했다.
입사 후 2년 정도가 지나 이직을 준비하던 즈음에 차세대 제품을 개발하는 부서가 신설됐다. 완전히 판을 엎는 개발 환경과 협업 시스템이었다. 새 부서는 기존 개발자 대신 신기술과 웹 기반 업무에 경력이 있는 외부 지원자들로 채워졌다. 차세대 제품의 개발언어로 Java가 채택됐다. 기존 제품의 주 개발 언어인 C++와 C#을 버리자, 기존 부서 개발자들이 벌 떼처럼 일어났다. 노조까지 합세해 새 부서의 개발 콘셉트를 공격했다. 하지만 관리자들과 외주 컨설팅 회사는 끈질긴 설득과 함께 Java를 주 개발언어로 하는 웹 기반의 설계를 밀어붙였다. 기존 개발자들의 불만과 불안이 쉬 가라앉지 않았다. 기존 제품이 완전히 탈바꿈한 새 제품으로 대체되면 이들의 일자리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새 부서에 지원하기가 껄끄러운 분위기였지만, 시장은 변하고 있었고 내게는 신기술에 올라탈 기회였다. 나는 새 부서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원해서 탈락이라도 되면 이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겠지만,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설레지 않는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몇몇 젊은 동료들이 새 부서로 지원서를 냈다. 최종 심사에 20대 후반 동료 둘과 내가 합격했다. 그렇게 나는 여유롭지만 설레지 않는 업무를, 도전과 더할 나위 없는 스트레스와 맞바꾸었다. 내 나이 막 쉰하나가 되던 해였다.
새 부서에서도 시니어 개발자 직책을 유지했지만, 내 시니어 경력이 새 개발 환경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실무에 사용한 적 없는 개발언어 Java를 시작으로 웹 기반의 개발 콘셉트와 설계까지, 공부할 내용이 산 넘어 산이었다. 스스로 따뜻한 아랫목을 박차고 나왔으니 발목에 단단히 힘주고 넘어보기로 했다. 홧팅!
관악산인 줄 알았는데 넘고 보니 설악산이었다. 어쩌면 관악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쉰 넘어 오른 관악산이 설악산으로 느껴졌을 수도. 새 기술을 익히느라 저녁과 주말 없는 삶이 석 달 정도 지속되었다. 부서 이동을 했어도 나는 신입이 아닌 시니어 개발자였다. 새로 익힌 기술을 나의 노하우와 융합해낼 수 있는 지점까지 가야 했다.
'네가 미쳤던 거지? 너 잘하는 거 하다가 은퇴하면 되잖아. 고생을 사서 하고 있구먼.'
이런 생각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나 잘하는 것만 하면 편안한 은퇴 전에 지루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기로 결심한 순간, 나의 화두는 '내려놓기'였다. 내 손에 든 손도끼를 내려놓아야 레이저 빔을 쥘 수 있으니까. 매일 출근길에 '라테 꼰대'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이 듦은 기침처럼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니 안 늙은 척하는 것도 내려놓기로 했다. 다초점 안경으로도 보이지 않는 깨알 같은 코드를 동료의 모니터로 같이 들여다볼 때는 노안 안경을 썼다. 나중에는 동료들이 알아서 글자 크기를 키워줬다. 반백의 머리로 노안 안경을 걸치고 신기술로 무장한 차세대 제품을 만들던 나는 50대 아줌마 개발자였다.
2021년 말 회사를 떠날 때 우리 부서에는 60여 명의 개발자가 일하고 있었다. 나는 두 번째로 나이 든 개발자였다. 환갑을 앞둔 동료, 나, 그리고 동갑내기. 동갑내기 동료는 구루 갑질을 해대다 자기 팀에서 쫓겨나 일 년 넘게 병가를 냈다. 내가 퇴사할 때까지 그는 복귀하지 못했다. 40대 개발자도 꽤 있었지만, 대부분이 30대 개발자였다.
50대 중반까지 개발자로 일하는 것이 독일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다. 많은 개발자가 40대가 되면 관리직이나 영업직으로 방향을 튼다. 나이 오십 넘어도 경력 있는 개발자를 찾는 회사는 많다. 적어도 독일에서는 본인이 원하면 나이 들어도 개발자로 일할 수 있다. 실력 있는 시니어 개발자는 관리자 못잖은 연봉을 받는다. 그런데도 왜 오십 넘은 개발자가 드문 걸까?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나는 빠르게 발전하는 IT 기술과 협업 환경의 변화를 이유로 꼽는다. 젊어서 입사해 나이 들어가면 재교육도 받고 스스로 살아남으려고 무한 노력을 한다. 이 경우, 개발자로 계속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마흔 넘어 이직하는 순간이 오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업무에 최적화되는 동안 IT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세분되어있다. 기업은 마흔 넘은 개발자에게 실무 노하우뿐만 아니라 신기술 탑재, 더 나아가 교육까지 요구한다. 지금 하는 업무와 관계없더라도 폭넓은 시야로 기술의 흐름을 읽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머리 희끗희끗해져도 개발자로 일할 수 있다.
협업 문화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외모가 늙는 건 내가 어찌할 방도가 없다. 젊어 보이려고 머리 염색하고 보톡스 맞을 생각 전혀 없다. 노안 안경이 어때서? 안 보이면 써야지. 하지만 마음이 늙는 것은 내 탓이다. 어느 분야든 20년 넘게 일했으면 베테랑이다. 이게 위험하다. 협업보다는 이끌고 싶어 한다. 그러자니 목소리가 커지고 독단이 많아진다. 구루는 말이 아닌 실력으로 평정한다. '라떼'는 잊고 팀원들과 같은 눈높이로 협업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나는 환갑 넘어서도 개발자로 일할 줄 알았다. 이 일이 좋아서 나이 들어도 계속하려고 편해질 만하면 이직을 했다. 비우고 채우면서 개발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다 쉰세 번째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과도한 스트레스가 나를 넘어뜨렸다. 이후 나는 개발자의 삶이 아닌 다른 인생을 살아보기로 했다.
오랜 시간 IT 전문가로 일하며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아깝지 않냐고 남편이 물었다. 전혀 아깝지 않다. 아쉬움도 없다. 시간을 되돌려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이 다시 온대도 나는 주저 없이 개발자로 일할 것이다. 하지만 개발자로 사는 건 여기까지다. 나 자신에게 손뼉 치며 떠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나는 여전히 분식이 좋다
'전반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글학교에서 글과 역사를 가르치다 (0) | 2022.04.26 |
---|---|
기억에 남는 중국 여행 (0) | 2022.04.21 |
나의 스크럼 이야기 (0) | 2022.04.04 |
서화의 펭귄 인형 (0) | 2022.03.23 |
독일 사람들은 정말 쌀쌀맞을까? (0) | 2022.03.19 |
댓글